아침 출근길 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다. 내용을 이해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며 중립을 지키는 손석희 씨의 멋진 모습에 반해버린 나.
하지만 사실 나는 토론에 익숙하지도, 토론을 잘 하지도 못한다.
지난 금요일 EBS 토론 프로그램 ‘토론 cafe’의 마지막 회 주제.
‘토론문화를 토론하다.’
우연히 체널을 돌리다가 관심을 끄는 주제라 열심히 시청했다.
우리의 토론문화의 문제점을 짚어가는 과정에서 토론문화의 약점이 나에게도 많이 발견되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점은 우리는 토론을 할 때 서로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자신’에 대한 판단과 거절,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자연스레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며 토론을 위한 귀를 닫게 만든다.
감정적인 토론의 원인은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지적되었다. 워낙 감정이 풍부하며 구술 문화가 발달된 민족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논리를 전개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논술열풍? 그러나 논술을 쓸 때는 한가지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 보다, gray zone 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게 좋은 점수를 받는 방법이기에 논술 교육도 논리력 증가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인문지식 또한 매우 빈약하다. 토론중에 ‘지식의 퇴행’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많이 공감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부정하기 힘들다.) 우리는 지식을 탐구하고 진리를 찾기 보다는 지식을 포장하고 사실을 검색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진리인가’ 보다는 ‘어느것이 더 cool 한가’, ‘무엇이 나의 마음을 더 움직이는가’에 더 열광한다.
만성적으로 지적되었던 파시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생산적인 토론을 방해한다. 단일 민족으로 지내왔을 뿐더러, 다양성을 인정하기에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것 같다. 지금 나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음식을 주문하기 보다는 하나로 통일해서 빨리 밥먹고 식당을 나가는 것이 더 선(善)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또 우리는 토론을 통해서 무언가 결정되는 의사체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직 우리는 뛰어난 카리스마와 선구안을 가진 청렴한 지도자를 갈망한다. 과하게 이야기 하자면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은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하는 뿌리가 우리속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토론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우리 스스로 토론을 기대하지 않고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토론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나 ‘추구해야 할 가치의 부재’도 사회적 담론의 힘을 약화시키는 지도 모른다. 더 이상 반공도 아니고 경제성장도 아니다. 그러면 통일? 글쎄...
인터넷 토론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루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visual 한 power를 갖지 못하면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장은 감성과 자극의 함정이 있으며 논의의 깊이를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댓글 한줄 한줄이 동일한 파워를 가진다는 것도 인터넷 토론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작성하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그 글이 전세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게시물이 된다는 것도 장점이자 댓글의 중독적 요소이다. (중학교 때 천리안 통신 시절 한 앨범에 대한 리뷰(간단한 감상)를 올린 후 내가 올린 글이 등록되었음을 확인했을 때 느꼈던 그 흥분감은 잊을 수 없다. 댓글을 올리는 행동은 즉각적으로 결과를 낳고 또 내 댓글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좋은 토론 프로그램이 개편으로 인해 종영된다는 것이 아쉽다.
그동안 넘치는 열정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김주환 카페지기와 엄한숙 연출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