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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종교적 신앙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위로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한 소용없는 위로는 결국 세상이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영적 세계관이 참이 아니므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프로이드는 내세에 대해 믿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오히려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동화 같은 곳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 신앙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 어려지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동화 같은 세상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화같지 않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얻는다. 진정한 신앙인이 원하는, 또한 살아가는 삶은 동화 같지 않다. 동화 같은 천국만 바라보게 하며 현실을 무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사는 날들의 의미를 더해 준다고 생각한다. (프로이드도 바울,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내적 체험’에 대하여 그 사실은 인정한 것 같다.)
저자는 이후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루이스의 회심을 이야기 한다. 루이스는 가장 중요한 실제는 우리를 창조한 분과 맺는 관계에 달려있다고 한다. 루이스의 회심은 31세에 찾아왔는데 이는 루이스를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고 하며 자기에게 맞춰져 있던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하게 했다고 하였다. 회심을 통해 루이스는 지성적 존재가 우주 너머에 존재할 뿐 아니라 바로 그 존재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영적인 탄생으로 창조자와의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루이스의 회심은 사도바울이 빛과 소리로 경험한 그것과 다르다. 그는 ‘영원한 인간’이라는 책을 읽은 후 많은 영향을 받았고, 무신론자였던 한 교수가 전하는 복음서에 대한 이야기도 영향을 주었다. 이후로 루이스는 조금씩 하나님을 발견 해갔다. 신화와 도덕률 속에서도 복음으로 향하는 화살표들을 발견한다. 루이스에게 ‘충족되지 않는 갈망’도 창조주가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그는 이러한 소망을‘소망에 따른 사고(wishful thinking)’가 아닌 ‘사고에 따르는 소망(thoughtful wishing)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메시아이며 죄를 용서한다는 예수의 말에서 그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적 스승일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루이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예수에 대하여 다음의 세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예수가 실제로 자신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2. 사악하여 자신을 속이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악마이다. 3. 지능이 낮거나, 정신이상증세(과대망상)를 나타내는 것이다.
루이스는 점차 창조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이에 마음의 문을 열기로 결정하였다. 점점 자신을 부르는 창조자와 실제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다메섹에서 빛과 소리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을 부러워 할 때가 많이 있었다. 바울의 그러한 열정적 사역과 복음에 대한 확신은 그러한 만남을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하지만 루이스는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갔고 그가 느끼는 갈망에 정직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결국 한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변증론자가 되었다. |